[호석] Just Dance

2018. 10. 18. 21:22

[호석] Just Dance

 

*

 

너와 나는 친구다. 남들이 아는 친구와는 조금 다른 의미의 친구. 특별한 친구다.

 

으응, 호석아……

 

네 야릇한 목소리로 내 이름이 불릴 때마다 온 몸의 털이 곤두설 정도로 짜릿하다. 정호석. 내 이름을 불러주는 네가 너무 좋으면서도 얄밉다. 네가 네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억누르다가 다시 토해내고 다시 억누르고 그런 과정을 반복하는 너를 보고 있자니 괜히 가슴 언저리가 짜릿해져 오는 거 같다.



신음, 참지 마

아으, 흐읏……

 

너는 역시 내 말을 듣지 않는다. 내가 신음을 참지 말라고 하던 참으라고 하던 너는 어차피 너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니까. 너의 그런 점이 좋다. 허리를 움직이는 리듬에 맞춰 너의 몸이 흔들리고 너의 목소리가 뚝뚝 끊긴다. 네가 내뱉는 숨결과 맞닿아 있는 살결이 뜨겁다. 방 안의 후끈한 공기에 점점 더 더워지는 거 같다. , 퍽 하고 살결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리면서 몸에 점점 더 흥분이 차오른다. 야하다, 내 밑의 네가. 야하다, 지금 이 순간이.

 

, 호석아…… 나아으응……!”

, ……

아응호석아, , 미쳐…… 미칠 거 같아……

, 나도…… 좋아좋아서 미칠 거 같아

 

얼마 안 가 나는 눈앞이 하얘질 정도로 짜릿한 절정의 순간과 함께 네 몸 위로 풀썩 쓰러졌고 너도 그런 건지 축 쳐진 채로 우리는 그렇게 뜨거운 숨만 내뱉어내고 있었다. 절정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네가 입을 열었다.

 

……힘들다.”



미안. 너무 격했나?”

 

너의 몸 위에서 내려와 옆에 누우며 하는 말에 네가 고개를 젓는다.

 

춤인데, .”

 

. 너는 항상 이 행위를 춤이라고 표현했다. 단지 너와 내가 같이 추는 춤일 뿐이라고. 감정이 없다는 뜻을 이렇게 돌려 말하는 건 아마 이 세상에 너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나. 아까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뜨거운 행위를 하고도 그렇게 서로 좋아서 끌어안고 서로의 숨결을 느끼고 서로의 살결을 만지더라도 너에게 있어 이 행위는 춤일 뿐. 아무 감정도 없다는 뜻이니까.

 

지금 몇 시야?”

“9. 잘래?”

씻고 자야 되는데……

내가 몸 닦아줄게. 얼른 자.”

…………되는데……

 

말이 끊기던 너는 이내 조용히 잠들어버린다. 새근새근 아기처럼 곤히 잠들어버린 네가 귀여워 웃음이 난다. 이렇게 순수해 보이는 얼굴을 가진 네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 밑에서 울었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잘 자네.”

 

너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중얼거렸다. 친구이자 몸을 섞는 관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관계. 서로 궁합도 잘 맞고 딱히 거부감도 없고 모르는 사람이랑 하는 것보다 아는 사람이랑 하는 게 더 마음이 놓이고 무엇보다 기분이 좋기에 이 행위와 관계를 이어나간다.

 

나 진짜 어쩌다 이렇게 됐지?”

 

분명 처음에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거 같은데. 분명 처음에는 이 관계가 옳지 않다고 생각했었던 거 같은데. 이 관계가 이어지기 전, 그러니까 이제 두 달도 더 된 이야기이다.

 

두 달 전-

 

호석아.”

?”

나랑 잘래?”

……?”

나랑, 잘래?”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물어보는데 너는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잘래? 라고. 너와 같이 춤 연습을 하던 새벽 3시의 연습실. 너는 그렇게 갑작스레 내게 물어보았다.

 

무슨 뜻이야?”

모르겠어?”

……너 지금 뭐하자는 거야?”

말 그대로야.”

너 그러니까 지금 나랑

, 하고 싶어. 너랑.”

 

하고 싶어. 이 네 글자로 내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가던 의심이 확신이 되었다. 그리고 너는 웃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예쁘게 웃는 얼굴로, 내가 좋아하는 미소를 지은 채로 너는 나를 갑자기 유혹했고 그 날 너와 나는 뜨겁고도 강렬한 밤을 보냈다. 술을 마신 것도 아니고 맨 정신에 그런 짓을 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 너는 역시 나를 웃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잘 잤어?”

……, 꿈이 아니네.”

 

너의 잘 잤냐는 아침 인사에 내가 멍하니 말하자 너는 아이처럼 웃는다. 그럼 꿈인 줄 알았어? 라는 말과 함께. 그리고 그 날부터 너와 나는 이런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낮에는 친구, 밤에는 이런 짓을 하는 친구. 그렇다고 해서 딱히 너에게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너나 나나 혈기왕성할 25살이기도 하고 성욕을 풀고 싶은데 모르는 사람이랑 하는 문란한 짓은 하고 싶지 않으니까 너도 나도 서로 만족하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자는 너의 몸을 젖은 수건으로 닦아주고 나도 씻고서는 네 옆에 누워 잠을 청했다. 너는 이내 뒤척이며 나를 꼭 안아왔다. 그런 너의 행동에 피식 웃으면서 너를 같이 안아주자 너는 잠결에 베시시 웃는다. 예쁘다. 친구지만 너는 정말 예쁘다. 너를 처음 만난 날도 그랬다.

 

너를 처음 만난 날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그래, 어떻게 잊어버리겠는가. 인근 클럽에 친구의 손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갔던 날이었다. 너는 사람들 사이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런 너를 향해 비춰지는 스포트라이트. 사람들은 너를 보며 환호성을 질렀고 나는 그 사이에서 멍하니 널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다 너와 눈이 마주쳤다. 너는 나를 쳐다보다가 웃었다. 야릇하고도 미묘한 미소였다. 그 순간 주위 사람들은 모두 지워지며 너만 내 눈에 들어왔다. 너의 춤이 한바탕 끝나고 너는 스테이지에서 내려왔다. 나는 홀린 듯이 너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

아까 춤잘 봤어요.”

, 고맙습니다.”

 

내 말에 너는 살며시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그 미소는 아까 스테이지에서 현란하게 허리와 골반을 돌리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게 만드는 환하고도 예쁘고 깨끗한 미소여서 나는 잠시 할 말을 잊어버릴 뻔 했다.

 

, 저기.”

?”

혹시, 제대로 배워볼 생각 없어요?”

 

내 말에 이내 너는 푸흡, 하고 웃음을 터트리더니 말했다.

 

지금 저, 스카우트 제의 하시는 거예요?”

 

그러더니 이내 좋아요. 하고 흔쾌히 수락하고는 그 날부터 같이 춤을 배우고 연습하고 무대 하는 그런 친구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너와 친구가 된 지 2년째. 너와 나는 이런 사이가 되어 있었다.

뭐라고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관계. 너는 나를 친구라고 생각하는 관계.

그리고 어쩌면 내가 너를……

 

………



……미쳤네, .”

 

내가 너를 좋아하는 그런 관계.

 

.

.

.

 

오늘 호석이 왜 이러지?”

 

선생님의 말에 내 동작이 멈추었고 주위 친구들도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섞여 너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걱정이 가득한 눈빛이다.

 

오늘 왜 이렇게 집중도 못 하고 동작도 계속 틀리고.”

죄송합니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오늘은 이만 해산할까?”

 

선생님의 말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나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짓을 하게 된다.

 

오늘만, 오늘만 쉴게요. 죄송합니다.”

……호석이 오늘 진짜 컨디션 안 좋구나. 알았어. , 다들 해산!”

 

한 번도 춤을 쉬겠다고 한 적이 없는데 내가 이러니 선생님과 애들은 걱정이 많은 듯 했다. 애들은 집에 간다는 기쁨, 연습을 마친 아쉬움을 표현하며 각자 흩어졌고 텅 비어버린 연습실엔 너와 나만 남았다.

 

나 오늘 진짜 왜 이러냐.”

 

내 말에 네가 천천히 다가와 어깨를 토닥인다.

 

그러게. 너 오늘 왜 그래?”

모르겠어

 

모르긴 뭘 몰라. 어젯밤 떠오른 문득 내가 너를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그리고 하루 종일 생각해 본 결과 나는 깨달았다. 내가 너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생각을 꼬리를 물어 언제부터였는지를 생각하게 했다. 처음 만난 날, 너와 처음으로 춤 연습을 시작한 날, 같이 연습실에 남아 호흡을 맞춰보고 서로 완벽하다고 생각해 뿌듯했던 날, 선생님한테 혼나 우울해져 있는 너를 내가 위로해준 날…… 등등. 생각해보니 너와 참 추억이 많은 나였다. 하지만 내가 언제부터 너를 좋아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무슨 일 있어?”

없어. 그런 게 어디 있냐.”

그러면서 왜 그래. 나 섭섭해질라 그런다? 무슨 일인데.”

 

너는 나를 끌어 연습실 바닥에 앉힌다. 그리고 내 앞에 앉아 나를 쳐다본다. 춤을 춘 것 때문에 땀이 흘러 네 머리카락이 네 목 근처에 붙어있는 게 오늘따라 왜 이리 섹시해 보이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진짜 미쳐가나 보다.

 

, 너 계속 말 안 하면 나 진짜 무슨 짓 할지 모른다?”

……뭐래.”

어어? 장난인 줄 아네? 진짠데.”

뭔데. 너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쓸데없는 짓 아닐 걸?”

 

이내 내게 슬금슬금 다가온다.

, 뭔데……

어서 말 하시죠, 정호석씨.”



 

………… 너. 저, 저리 안 가?"

내가 왜 가냐? 너라면 가라고 한다고 내가 갈 거 같아?”

 

살금살금 마치 고양이처럼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오더니 이내 내 무릎 위에 앉는다.

 

“-!! , , . , , 안 떨어져?”

흐음? 내가 왜?”

, 너 진ㅉ…… -.”



이내 내 입술은 너로 인해 막아졌다. 순간 놀라 내가 굳어있는 사이 너는 네 팔을 내 목에 두르며 길게 키스해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 채 꼼짝없이 너에게 키스를 당하고 있는데 이내 네가 떨어지며 웃는다.

 

어서 말해 봐.”

……너 진짜 이렇게 굴지 좀 마!!”

 

내가 화가 나 버럭 소리를 지르자 너는 놀란 것 같다. 이렇게, 이렇게 말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가벼운 너의 행동에 화가 났다. 내 마음도 모르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렇게 설렁설렁 뭐든지 다 자기 마음대로 해대고. 아무 감정도 없이 춤이라고 하는 주제에. 그런 주제에 키스를 하지 않나 무릎에 앉지를 않나. 화가 났다. 어느새 너는 내 무릎에서 벗어나 말했다.

 

……. 갑자기 왜, 왜 그래

, 너 진짜 성격 나빠. 알아?”

호석아

지금 내가 어떤 심정인지 어떤 기분인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가볍게 굴고.”

……

내가, 내가 지금 너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줄이나 알아?!”

 

좋아해. 좋아한다고. 내가 너를.

이렇게 아무 감정도 없으면서 나와 몸을 섞고 이렇게 항상 나한테 먼저 다가오고 야릇한 미소를 지어보이고 내가 좋아하는 환한 미소를 지어주는 너를, 내가 좋아한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근데 무서웠다. 그렇게 말했다가 이 관계가 끝나버릴 거 같아서. 좋아한다고 했다가 네가 거절하는 그 순간 너와의 이 관계는 무너질 테니까.

 

호석아 갑자기 왜 그래. 너 진짜 무슨 일 있어?”

……내가.”

……?”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하면, 너 어떡할래?”

……?”

 

. 끝났다. 무너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끝났다. 너와 나의 관계가.

 

내가 너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

호석아

말해줄까? 나 진짜 미쳐버리겠어. 춤만이 내 길이라고 생각하고 달려왔어. 내 인생에 남은 건 춤밖에 없었어. 춤을 추면 너무 기분이 좋아서, 내가 살아있는 거 같아서 너무 좋았어. 가끔 혼자 남아진 연습실이 적막해도 괜찮았어. 그런데 아니야. 이제, 이제 네가 아니면 안 돼.”

…………

 

이제 멈춰야 한다.

 

……너랑 같이 하는 게 좋아.”

 

더 이상 말하지 마.

 

너랑 같이 춤추고 같이 웃고 싶어.”

 

제발, 제발 입 다물어.

 

춤만큼 네가 소중해.”

 

제발. 정호석, 멈추라고.

 

좋아해. 내가, 너를.”

 

……시발.

결국 속사포처럼 내 안에 눌러왔던 말들이 터졌다. 너는 멍하니 나를 쳐다본다.

 

………그러니까.”

 

제발.


 

감정이 없는 이런 짓 하지 마.”

 

말이 없다. 조용하다. 조용한 연습실이 숨이 막히게 어색하다.

 

……미안해.”

 

네 말에서 나온 사과의 말이 내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그래, 알고 있었다. 너한테 나는 단지 친구일 뿐이라는 걸.

 

내가내가 몰랐어.”

 

당연히 몰랐을 거다. 나도 지금까지 몰랐던 걸 네가 어찌 알까.

 

……너랑…… 내가 같은 마음인 줄.”

 

………?

 

……내가, 너무 늦었나?”

 

고개를 들고 너를 쳐다보자 네가 눈물을 머금고 웃는다. 내가 좋아하던 그 미소다.

 

아아…… 두 달 만에 정호석 고백 받기 성공했네진짜 너

 

눈물이 네 볼을 타고 흐르자 너는 웃으면서 눈물을 닦아낸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지금 너는 무슨 말을 하는지,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듣는 건지 혼란스럽다.

 

……네가 나 좋아하게 만든다고 별 짓 다 했네, 진짜.”

 

너는 천천히 울면서 말을 이어갔다.

 

너는 두 달 전. 그러니까 네가 나에게 자자고 제안하기 전 날 자기가 나를 좋아하는 걸 알았다고 한다. 그 당시 너는 내가 자기를 친구라고 생각하는 걸 뻔히 아니까 이 관계에 누군가 먼저 다가가지 않는 한 발전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랬던 거였다. 자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한 건. 자존심 팍팍 구겨가면서 너는 참았다고 했다.

 

그 행위를 할 때마다 좋아해. 좋아해. 사랑해. 하고 말하고 싶은 걸 꾸역꾸역 참느라 애썼다면서 결국 너는 얼굴을 양손으로 가리고 울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웠지만…… 이거 하나만은 알았다.

 

너도……내가 좋아……?”

 

내 질문에 너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그래, 너와 나의 미묘한 관계는 깨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확실한 관계가 자리를 잡았다.

연인이라는 관계가.

 

.

.

.

 

너의 울음이 멈추고, 여긴 너희 집이었다.

 

내가 이야기했잖아……

?”

춤이라고.”

 

. 그래, 이건 춤이다. 너와 내가 같이 호흡을 맞춰가는 춤.

 

……나도, 너만큼 춤을 좋아하거든……

 

춤을 좋아했듯이 널.

 

……호석아.”

……?”

오늘, 밤 새워서 같이 춤이나 춰볼까?”



그 말 후회하지 마.”

내가 후회하는 거 봤어?”

 

네 말에 피식, 웃음이 난다.

 

못 봤어.”

 

그리고 그 날. 왠지 너의 체온이 더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나는 내가 너와 처음 했던 날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했다.

 

……, 꿈이 아니네.”

……꿈일 리가 없지.”

 

너의 입가엔 미소가 번진다. 내 인생에 춤 말고 소중한 게 생겼다. 내 인생에 한 송이 꽃이 피었다.



사랑해.”

 

너라는 꽃 한 송이가.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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